다정한

아무거나 괜찮아

사람이 무엇인가 절실해지면 이들에게 맞춤법 책에까지 위로와 자기합리화의 소스를 찾아낸다는 교훈을 남긴 이 에피소드와 정도만 다를 뿐, 소소하게나마 독서라는 행위 속에서 책과 내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에는 이런 자기편향성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이것이 독서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유겠지만 독서량이 결코 지성의 척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유명 다독가 중에도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이를 가리키는 단어도 표준어로 등재돼야 한다.

쓸 것이 없는 정도?). (김헌비 지음 다정소감 중)

나는 내가 잘 노는 사람인 줄 알았어. 이제는 알 것 같다.

노는 데도 체력이 필요해 아무리 나인투식스 생활을 했다고 해도 8개월이나 지났는데 어느새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더 잘 수 있는데 아침 일찍 잠이 깬다.

휴대전화 시계를 한번 보고, 새벽에 부지런한 유튜버들이 올린 영상을 누워서 보고 다시 잔다.

아, 좋아 이러면서 오래 잔 것 같은데 10시나 11시. 베개 옆의 인형을 받침대로 놓아둔 전자책(e-북) 리더의 전원을 누른다.

내려서 위로하고, 무조건 위로하고, 바로잡는 위로, 영혼 없는 위로, 온갖 위로를 듣고 싶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건 책 읽는 거 김홍비의 산문집 다정소감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이 무언가에 절실해지면 어떤 것에도 의존하게 된다.

저녁 뉴스 보면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따라 올라온 영상 보면서 까먹은 책 읽으면서 발화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도 의미를 살피며 위안을 주입한다.

“나는 무능하고 무기력해질지도 몰라!
” 김홍비의 말이 위에서 몽둥이를 맞고 비틀거린다.

명절 여자들이 남의 집 제사에 목숨 걸고 일하기로. 축구해서 좋아진 게 뭐냐는 질문에 집주인과 잘 싸울 수 있는 일에. 사내 정치에 휘말려 이상한 부서에 가서 고생한 일이에요. 동료들이 새벽부터 찾아와 머리 올리고 화장해 준 것을. 한마디로 힘들여 주변 사람들이 보여준 다정함에 무능력과 무기력을 떨쳐버린 일화를 읽고, 비겁하게 남의 고생담을 읽으면서 나는 누워서 힘을 낸다.

일어나서 두부와 계란을 볶아서 밥을 먹는다.

간식도 든든히 먹어.

「상냥함」은 그렇게 나를 깨웠다, 인생 최대의 고비를 무사히 넘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라고까지는 할 수 없고.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어렵게 쓰지 않는 문장, 사랑해 마지않는 말장난이 섞인 문장, 선을 넘지 않는 농담을 적절히 구사해 쓰는 문장이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현실도 힘든데 읽고 있는 책마저 어렵고 난해하다면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다정소감은 독자를 괴롭히지 않는 책이다.

어떤 마음이 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슨 감정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힘들고 내가 이상한 건지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없는 나는.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독서를 끊임없이 했는데. 남기는커녕 나를 납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

책에다 다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정 소감」의 문장, 김홍비의 논리적인 유머 앞에서 기분이 풀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쓰지 말아야 할 용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소박함 앞에서도.

지금 내 마음을 알 수 있는 문장을 다정소감에서 발견했다.

사람 사는 거 변하지 않는군. 돈 벌고 사는게 나만 어려운게 아니구나. 욕만 하고 비언어적 반어적 표현으로 그동안 나를 괴롭혔다.

끊임없이 나를 나무라게 했던… 무슨 시간을 나만 겪은 게 아니구나. 김혼비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다.

친구가 만들어준 ‘정말 미친 사리곰탕면’ 먹고. 7년 동안 반장하면서 겉도는 애가 없을까 봐 꾸밈새도 신경 쓰는 사람들의 행동을 잘 봐주면서.

책은 누워서 읽지만 리뷰는 앉아서 쓴다.

나를 깨워주는 책 자칫하면 자책감과 후회로 얼룩질 뻔한 시간에 김홍비의 ‘다정소감’은 어떤 부드러운 애정을 살짝 내 곁에 남겨준다.

너에게도 있어 착한 사람과 착한 추억이 네가 하지 못한 말을 내가 할 테니까 혼자 울지 마. 축구를 잘하는 언니는 위로해 줄 거야. 「가식에 대하여」는 꼭 읽어주기 바란다.

나의 유일한 무기, 친절함, 어떤 사람은 가식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괜찮다라고 등을 두드려 주는 문장이다.

모든 게 괜찮고 괜찮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