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선자령 눈산행 선자령

대관령-선자령-대관령

h. 일시 : 2022년 3월 21일 월/구름 다소, 홀로 ㅇ. 개요 1110 대관령휴게소 주차장 출발 1330 선자령 1530 주차장 도착 ※ 총 12.7km, 4시간 20분 소요

엊그제 영동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어제 뉴스에서는 대관령에 전국에서 몰려든 눈꽃 등산객들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올 겨울에도 선자령에 눈 산행을 한 번쯤 다녀오려고 기회를 봤으니 3월 하순 눈이 이렇게 좋아할 수는 없다.

대관령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무채색의 시원한 겨울산 풍경이었지만 평창을 지나면서 산에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하얀 눈의 세계가 환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정점을 통과하면서 확산세가 무서운 기세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커피만 한잔 사러 잠시 들렀고 등산 간식뿐 아니라 오가며 먹을 간식까지 모두 준비해 나갔다.

차내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출발하다.

스틱의 절반이 묻힐 정도로 생각보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을 떠나면서 도로 위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꿇었다.

넘어질 때 충격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고 손에 들고 있던 디카 화면에 녹색 선이 생기면서 카메라가 작동을 멈췄다.

배터리를 분리한 다시 끼워 주물럭거리다 보면 다행히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집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 충격 때문이었는지 타임스탬프가 바뀌어 사진이 찍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작은 사고에 사기가 떨어졌지만 눈 덮인 숲 속에 발을 들여놓으면 금세 잊어버린다.

주차장에는 차 높이만큼이나 눈을 치운 눈이 쌓여 있었다.

옛 대관령 휴게소의 모습.최근에는 양목장 방문객이나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이 이정표 앞에서 미끄러져 등산 초반부터 당황했다.

오늘 코스는 국사성황사 방향 계곡길로 선자령에 오른 뒤 능선길로 다시 원점 회귀할 예정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시간적으로는 일몰 전에 하산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일 늦어질 경우 하산할 때 야간 등산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계곡길에서 시작해 능선길이로 하산하는 시계방향 코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산할 때 어두워져도 능선길은 막바지가 임도이므로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휴게소를 떠나 곧바로 숲길로 들어선다.

기대만큼 풍성한 눈으로 가득 찬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마다 육중한 눈의 무게로 휘어져 있으며 드물게 눈의 무게 때문에 부러진 가지도 만난다.

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단단하게 단련되어 미끄러웠다.

문득 아이젠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생각난다.

어제 저녁에 미리 준비해 둬야 했는데 아침에 생각 못하고 그냥 출발했다.

3월에 내린 눈이라 그런지 녹기 쉽고 1, 2월에 내린 눈이 아니라 미끄럽다.

등산 내내 미끄러지는 길을 스틱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다행히 기복이 매우 완만하고 걷기 편해 경사로만 잠시 조심하면 크게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계곡길은 정말 걷기 좋다.

하얀 눈 덮인 계곡 속에서 물이 흐르는 모습은 먼 길을 달려온 산객들을 만족시킨다.

길 옆에 스틱을 꽂아보면 스틱 길이의 절반 정도가 눈에 띈다.

대체로 적설량이 60㎝ 정도 되기 때문에 길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나처럼 눈 산행을 즐기러 많은 사람들이 선자령을 찾은 것 같다.

문득 눈길에 떨어진 검은 물체가 눈에 띈다.

스마트폰이다.

투명케이스에 신용카드까지 꽂혀 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기 때문에 들면서 주인을 찾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마도 남편은 전화를 할 것 같았다.

시작부터 풍성한 눈축제다.

눈이 내린 지 하루가 지났지만 포만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곧 양떼 복장의 울타리와 만난다.

울타리 너머에서는 방문객 한 쌍이 즐거운 듯 눈밭에 누워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겨울 골짜기 눈과 물의 앙상블

이곳에 하늘목장 안내판이 있었던 것 같다.

넓고 평평한 곳이다.

저기 보이는 풍력발전기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정상에 오르는 오르막길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제설작업이 되어 있는 걸 보니 제설차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같다.

선자령 직전 마지막 300m 오르막이 오늘의 코스 중 가장 긴 오르막이다.

아이젠을 채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끝을 따라 조심스레 경사를 오른다.

거의 올라가 뒤를 돌아보면 풍력발전기가 눈으로 덮인 대관령 목장지대 위에 우뚝 솟은 모습이 멋지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면서 사진에 풍경을 담는다.

선자령 정상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눈 덮인 설원에 거대한 정상 비석이 자랑하듯 솟아 있다.

사람들이 사진 찍는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사진 몇 장 찍고 간식 먹는 자리를 둘러보니 앉을 곳이 없다.

설원 끝에 서서 간단히 간식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린다.

하산할 준비를 하던 중 올라오는 길에 주운 전화기 벨이 울린다.

분실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자신은 하산 중인데 휴게소에서 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기를 받는다고 한다.

정상 직전에 뒤를 돌아보면 이처럼 멋진 설경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 길이라 옛날 이 능선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얼굴에 자신이 없고 잘생긴 모습으로 부분각색

사람들이 계속 오르고 있다.

그 무렵 운무가 밀려와 선자령을 덮기 시작한다.

아이젠을 하지 않아 하산길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가파른 경사가 없고 완만한 길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와서 낯익은 길이라 그런지 걷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자꾸 내려간다.

하산길에는 가난해지도록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선자령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2시간을 예상했지만 30분이나 일찍 휴게소에 도착했다.

하산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운무가 들어와 시야가 가려진다.

스마트폰 주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기다렸다고 여성 1명이 나타나 전화기를 받는다.

산에서 통화는 남자랑 했는데 아마 가족이었던 것 같다.

전화기가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문득 나도 예전에 천마의 지맥종주 때 전화기를 잃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버스를 타고 갔는데 등산을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서야 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기가 버스 안에서 빠져나간 것을 깨달았다.

급히 다시 돌아와 등산로 입구 식당에서 부탁해 전화해보니 버스기사가 내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기다렸다가 종점에서 돌아오는 버스기사에게 전화기를 돌려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날 등산 자체를 망칠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다음 전화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

바지 앞주머니나 상의에 넣은 뒤 반드시 주머니 지퍼를 달아 혹시라도 분실에 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등산 뒷정리를 하고 아내가 넣어준 돈부리면에 가져온 보온병 물을 부었다.

물이 그렇게 뜨겁지 않아서 면이 딱딱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휴게소에서 식사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침에 출발한 지 1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 시간에 서울에서 대관령으로 등산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올해는 눈이 내리지 않고 너무 건조해 아선자령 눈 등산은 포기했지만 의외로 즐거운 눈 등산이었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등산을 마치다.

<belega>